상황별로 이렇게 읽기도 합니다
예전처럼 밥을 차려 주셨다면
엄마가 부엌에서 늘 하던 대로 밥상을 차려 주셨다면,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고 싶은 마음이 비친 장면으로 읽는 경우가 많아요. 요즘 내가 많이 지쳐 있어서, 가장 편했던 기억이 먼저 찾아왔을 수 있어요.
환하게 웃고 계셨다면
힘들던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밝은 얼굴로 나오셨다면, 내 마음이 그분을 편안한 모습으로 기억하기 시작한 때라고 읽기도 합니다. 깬 뒤 마음이 따뜻했다면 그 온기를 오래 품어도 좋아요.
무언가 말씀하셨는데 기억나지 않는다면
분명 무슨 말을 들었는데 깨고 나니 흐릿하다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있다는 뜻으로 읽기도 합니다. "잘하고 있다", "괜찮다" 같은 말을 내가 나에게 해 줘야 할 때일 수 있어요.
꾸중하시거나 서운한 얼굴이었다면
생전처럼 잔소리를 하시거나 얼굴이 어두웠다면, 내가 나 자신에게 엄격해져 있는 때로 읽는 경우가 많아요. 그분의 목소리를 빌려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만해요.
손을 잡거나 안아 주셨다면
꿈에서 손의 온기나 품을 느꼈다면, 위로가 필요한 마음이 그대로 비친 장면으로 읽어요. 그 따뜻함은 꿈이 끝나도 내 안에 남아 있는 기억이에요.
다시 떠나시는 뒷모습을 봤다면
문밖으로 나가시거나 멀어지는 모습을 봤다면, 이별을 마음속에서 천천히 받아들이는 중이라고 읽기도 합니다. 붙잡지 못해 서운했더라도, 그만큼 그분을 잘 보내 드리고 있는 과정일 수 있어요.
아빠가 말없이 옆에 앉아 계셨다면
무뚝뚝하던 아빠가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었다면, 표현은 서툴러도 지켜봐 주던 그 마음을 그리워하는 장면으로 읽기도 합니다.
옛 풀이와 요즘 읽기
옛 해몽서에서는
옛 해몽에서는 돌아가신 어버이가 꿈에 오는 것을 자식 얼굴을 보러 다녀가는 장면으로 읽기도 했습니다. 얼굴이 밝으면 집안이 편안한 쪽으로, 얼굴이 어두우면 자식이 요즘 많이 힘든 쪽으로 보기도 했어요. 어느 쪽이든 자식을 아끼는 마음으로 풀었습니다.
요즘은 이렇게도 봅니다
요즘은 이 꿈을 그리움을 품고 살아가는 과정의 한 장면으로 많이 읽어요. 기일이나 명절, 계절이 바뀔 때, 부모님 나이에 가까워질 때, 내가 누군가를 돌보게 될 때 이런 꿈이 자주 찾아와요. 꿈에서 울다 깼다면 그 눈물도 마음이 그분을 보내 드리는 한 방법이에요. 이 꿈이 무엇을 하라고 시키지는 않아요. 그저 오늘 하루, 그분이 내게 남겨 준 말버릇이나 손맛 하나를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꿈에서 뵌 모습이 생전과 조금 달랐더라도 마음 쓰지 않아도 돼요. 꿈은 내 기억과 그리움이 함께 만든 장면이라, 그분의 가장 따뜻했던 순간이 여러 기억과 섞여 나오기도 하거든요.
신관 한 마디
보고 싶은 마음이 길을 내면, 꿈으로도 오시는 거란다.
뭘 하라고 오신 게 아니야. 네 얼굴 한 번 보러 오신 게지.
깨서 울었거든 실컷 울거라, 그것도 그리움을 보내 드리는 법이란다.
이 꿈을 꾼 날, 내 사주에선
같은 부모님 꿈이라도 사주마다 읽는 법이 달라요. 가족과 내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그 인연이 내 사주 어디에 놓였는지에 따라 같은 장면도 다르게 풀리거든요. 결제 전에 내 사주 여덟 글자부터 무료로 확인해 보세요.